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범고래가 물 위로 날아오르면서 놀라운 묘기를 선보이자 3000명이 넘는 관중들은 놀라움에 탄성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스탠드에 앉아 있는 관중들의 눈은 거대한 범고래와 조련사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푸른색 셔츠에 카키색 바지를 입은 한 남자는 다른 누구보다도 더 놀란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범고래들의 놀라운 묘기에 관중들이 갈채를 보낼 때마다 그 남자의 눈도 놀라움과 즐거움으로 빛났다. 그러나 쇼가 끝나 함성이 잦아들고 주위가 조용해지자 그의 안색은 흐려지고 시선은 멍하니 하늘을 향했다.
웨스 킹슬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이곳, 올랜도에 왔다. 지금은 회의 참석자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골프를 치거나 이 지역의 명소를 방문할 수 있도록 일정이 비어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는 잠시나마 자신의 문제를 잊어보려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해상 동물원을 찾아온 것이다.
그는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스타디움에 관중들이 들어차기 전에 도착한 그는 푸른 물이 넘실거리는 풀장의 위쪽에 자리를 잡았다. 조련사들이 관중에게 인사하고 안전 수칙을 알려준 다음 곧바로 신비로운 안개가 수면 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관중석의 뒤편 위에서 물수리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물수리들은 갑자기 관중석의 위쪽에서 날아와 찰랑이는 물을 향해 다이빙을 하더니 안개 낀 물속에서 미끼를 낚아챘다. 새들이 날아가자 검은색의 큼직한 등지느러미가 물살을 갈랐고, 관중들은 물속 깊은 곳에서 원을 그리는 검은색의 거대한 형상을 숨죽이고 바라보았다.
잠수복을 입은 조련사가 안개 속에서 카약을 타고 나타나자 거대한 범고래의 지느러미가 그를 둘러쌌다.
이 극적인 개막에 이어 세 마리의 범고래들이 계속해서 놀라운 곡예 점프와 다이빙을 선보이며 쇼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바다에서 가장 무서운 포식자로 알려진 무게가 5000파운드가 넘는 범고래들이 관중들에게 가슴지느러미를 흔들고 조련사를 배에 태워 헤엄치며 관중석 앞쪽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꼬리로 물세례를 하는 장면은 실로 장관이었다. 관중들은 웃음과 탄성, 그리고 놀란 표정과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며 쇼를 즐겼다.
웨스 킹슬리도 앞에서 펼쳐지는 쇼에 매료되었다. 마지막으로 범고래 세 마리가 반짝이는 등지느러미를 세우고, 흰 배를 풀장의 무대에 올려놓고 채로 정중히 인사하자 웨스는 자신의 작은 노트에 무언가를 급히 적어 내려갔다.
스타디움을 빠져나가는 인파 속에는 ‘스플래시 존(splash zone)' 이라 불리는 앞줄에 앉아 있다가 물세례를 받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물세례로 옷이 흠뻑 젖었다는 사실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즐거워했다.
웨스 킹슬리는 텅 비어 있는 스탠드 위쪽에 앉아 풀장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거대한 물살을 일으키던 깊고 푸른 물결이 서서히 잠잠해지자 그의 기분 또한 잦아드는 것 같았다.
관중들이 모두 나가고 스타디움이 조용해지자 물속에 있는 문이 열리고 거대한 검은 물체가 풀장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조련사가 문을 나와 풀장 주변을 거닐기 시작하자 범고래는 곧장 그에게 헤엄쳐 왔다.
“잘했다, 샴.”
조련사는 고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휴식 시간을 마음껏 즐기렴. 넌 그럴 자격이 있어.”
조련사가 다시 풀장 주변을 걷기 시작하자 고래도 그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도록 그와 함께 있고 싶은 것 처럼......
스탠드에 앉아 있던 웨스 킹슬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쇼가 끝나면 고래도 자유롭게 휴식시간을 보내고 싶어할텐데, 오히려 범고래는 자신을 감독하고 관리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휴식 시간에도 조련사와 함께 하다니!’ 쇼가 시작될 때부터 가졌던 의문이 더욱 강해졌다. 조련사에게 가서 질문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창피를 당할까봐 망설였다. 조금 있다 그는 벤치에서 일어나 재빨리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풀장 가장자리로 다가가 조련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실례합니다.”
조련사가 놀란 듯 쳐다보더니 출입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출구는 저쪽인데요.”
“그게 아니라, 뭘 좀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다가서는 웨슨 조련사의 거절을 받아들이지 않을 듯한 기세였다.
“그러시죠......”
기세에 놀란 조련사가 대답했다.
“뭘 알고 싶으신가요?”
웨스는 지갑에서 100달러 지폐를 꺼냈다.
“대답해주시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겠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아마 이 쇼를 본 모든 사람이 궁금해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결이 무엇일까?’ 라는 것이죠. 이 고래들이 당신을 위해 쇼를 하도록 어떤 술책을 쓰는 겁니까? 혹시 굵기 나요?”
잠수복 차람의 조련사는 뜻하지 않은 방문객의 무례한 행동을 가까스로 참으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술책이라뇨! 그런 건 없습니다. 굶기지도 않죠. 그리고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어떻게 하는 겁니까?”
웨스가 물었다. 하지만 조련사가 굳은 표정으로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자 그제서야 분위기를 파악한 웨스의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든 것을 깨닫고 돈을 지갑에 넣었다.
“죄송합니다.”
웨스는 악수를 청하며 사과했다.
“저는 웨스 킹슬리라고 합니다. 기분이 상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정말로 이 동물들이 어떻게 이런 대단한 공연을 할수 있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해서 그랬습니다.”
“데이브 야들리 입니다.”
조련사가 악수를 하면서 말했다.
“이곳에서 동물의 훈련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런 질문이라면 잘 찾아오신 것 같군요. 궁금하신 점에 대한 답을 드리지요. 그건 바로 우리에게 선생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 만나보시겠습니까?”
웨스는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나 하고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가 다시 뒤를 돌아봤을 때 데이브는 범고래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 녀석이 바로 우리의 선생님 입니다.”
데이브가 웃으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이름은 샴입니다. 이 녀석과 여기 씨월드의 다른 범고래들이 우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 멋진 동물들과 함께 일하고 있을 따름이죠.”
웨스는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지금 이 동물이 당신을 훈련시켰다는 말입니까? 제 생각에는 그 반대일 것 같은데요.”
데이브는 고개를 저었다.
“샴은 전 세계의 모든 동물원에 있는 범고래 가운데 가장 큰 범고래 입니다. 누가 누구를 훈련시키느냐를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범이 있습니다. 무게가 수천 파운드나 나가는 말 못하는 동물을 다룰 때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웨스는 샴의 거대한 입 사이에 있는 날카로운 이빨을 쳐다 봤다.
“제 생각에는 샴이 가르쳐줄 수 있는 건 단지 그의 기분을 항상 좋게 유지시켜야 한다는 것뿐인 듯한데요.”
“보동 그렇게 예상합니다. 그러한 생각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많이 있으니까요.”
데이브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범고래는 바다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육식 동물입니다. 눈에 보이는 건 뭐든지 먹어치우죠.”
“말씀대로라면 범고래가 가르쳐 주는 것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면, 위험해서 이렇게 함께 있을 수조차 없었겠군요.”
웨스가 놀라워하며 말했다.
“바로 맞추셨습니다.”
데이브가 빙그레 웃으며 맞장구쳤다.
“저희가 제일 처음 배운 것이 그것입니다. 범고래에게 벌을 주고 나서 조련사에게 ‘범고래와 함께 물속으로 들어가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죠.”
“죽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죠!”
웨스는 자신의 추측이 맞아떨어지자 소리 높여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샴이 쇼에서 보여줬던 그 놀라운 점프가 생각나서 다시 물었다.
“이렇게 거대한 동물이 혼자 물 표면에서 3미터나 점프를 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어떻게 그런 멋진 쇼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겁니까?”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진 일은 아닙니다.”
데이브가 말했다.
“샴은 우리에게 인내심을 가르쳐줬습니다.”
“어떻게요?”
웨스가 놀라워하며 물었다.
“샴은 저든 자른 조련사이든 그 어떤 사람이라도 신뢰할수 있기 전에는 절대로 말을 듣지 않습니다. 샴과 함께 일하면서 저는 저의 의도를 샴이 완전히 납득하기 전에는 어떤 훈련도 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죠. 그래서 새로운 고래를 받아들일 때마다 일정 기간 동안은 아무런 훈련도 시키지 않습니다. 신뢰가 생길 때까지 저희가 하는 일이란 그저 배가 고프지 않게 해주고 물 속에 들어가 같이 노는 것뿐입니다.”
“어떤 걸 납득하도록 만든다는 거죠?”
“우리가 그들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고래들에게 당신에 대한 신뢰가 생기기를 기다린다는 말이군요.”
“맞습니다. 그것이 저희가 동물들과 일하면서 가장 큰 원칙으로 삼는 것입니다.”
웨스는 노트와 펜을 꺼내 받아 적기 시작했다.
“기사를 쓰시는 건가요?”
데이브는 혹시 웨스가 기자가 아닐까 생각하며 물었다. 그러나 웨스가 어색한 웃음을 짓자 다시 물었다.
“아니면 연구를 하시는 건가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연구라고 하면 될 것 같군요. 새로운 걸 배워서 저나 다른.....”
데이브는 웨스의 말을 기다리면서 쳐다봤다. 웨스의 머뭇거리는 말투에서 데이브는 그가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조금 전과 같은 무례한 행동을 했던 거 였군.’ 데이브는 웨스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